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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총론

환경상식 톺아보기 - ‘빚 폭탄’보다 가난 대물림이 더 문제다

‘빚 폭탄’보다 가난 대물림이 더 문제다

이수경

 

인터넷한겨레, 환경상식 톺아보기 2015. 06. 04

인간환경선언서 미래세대 권리 첫 인정, 현세대 불평등 눈감는 핑계 돼서는 곤란

세대간 불평등보다 같은 세대 불평등 더 커, 확대되고 세습되는 불평등 먼저 고쳐야

 

04835860_R_0.jpg » 폐지를 모아 고물상으로 나르고 있는 노인.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 가운데 가장 높다. 사진=이정용 기자

 
공무원 연금 개혁에서 시작된 공적연금 개혁안이 청와대의 반대로 갈팡질팡하더니 겨우 논의는 하기로 정한 모양이다.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높이거나 기초연금을 강화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제일의 노인 빈곤율을 해소하자는 여야의 합의에 청와대는 미래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몰염치라며 찬물을 끼얹었다.
 
시민의 권리에 대한 청와대와 정부의 인식이 미래세대까지 이른 걸 보면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위기에 빠졌다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듯싶다.
 

gandhi.jpg » 1972년 6월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가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간디는 이 회의에서 "빈곤은 가장 무서운 공해"라며 불평등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UN Photo/Yutaka Nagata


 “인간은 인간의 삶에 행복과 존엄을 주는 환경 안에서 자유, 평등 그리고 합당한 삶의 지위를 영위할 기본권을 갖고 있고 동시에 현재와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개선하고 보호해야 할 엄중한 책임을 갖는다.”라는 1972년 유엔인간환경선언1)은 미래세대의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선언이다. 
 
기후변화나 생태계, 오존층의 파괴로 미래세대가 더는 우리와 우리 이전 세대가 누렸던 환경을 물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그리고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미래세대의 권리까지 존중하게 한 것이다.

 

00204833_R_0.JPG »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청소년 회원 33명이 2001년 5월27일 환경연합 마당에서 새만금사업 강행을 주장한 30명의 명단과 발언 내용을 담은 타입캡슐을 묻은 뒤 시화호에서 죽은 조개 껍데기로 조개무덤을 만들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날 행사는 “미래세대의 공동자산인 갯벌과 환경을 훼손한 이들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윤운식 기자

 
또 2001년 “새만금 환경 지킴이 미래세대 소송”은  현 세대의 개발논리에 맞서 어린아이와 청소년 등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들이 자신들의 환경권의 보장을 요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미래세대 소송이었다.2)
 
이렇게 환경분야에서 시작된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과 배려가 정치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 바람직한 일에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미래세대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애초의 취지와는 다르게 현재세대의 불평등을 눈감거나 강요하는 핑계로 사용되는 현재의 세태다.

 

05309495_R_0.jpg »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소일하는 노인들. 이들에게 미래 세대를 위해 더 참으라고 할 수 있을까. 사진=신소영 기자
 
가난한 나라를 물려받아 허리띠를 졸라매고 청춘을 바쳐 세계 10대 부국으로 만들어 놓은 노인들은 부끄럽게도 지금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가난하다. 또 군사독재의 억압 속에서 민주화를 일구었던 중장년은 자식 같은 청년세대와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것처럼 비치는 현실이 서글프다. 
 
파이를 키워서 부를 나누자는 말에 참고 견뎠던 현 세대의 가난한 이들에게 미래세대를 위해 더 참으라고 강요하는 건 자식 같은 미래세대가 아니라 같은 세대의 기득권 세력이다.
 
국민연금 고갈, 정년연장과 신규취업, 임대시장의 월세 확대 등 젊은 세대와 은퇴 세대가 끊임없이 세대 간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부뿐 아니라 학벌까지 세습화하는 현실에서 세대 간 경쟁은 계층 간 경쟁에서 밀려난 세대 간 싸움일 뿐이다.

 

p.jpg » 지난해 9월19일 방한 행사 ‘1% 대 99%’ 토론회에서 < 21세기 자본 >의 저자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집중을 막으려면 한국도 누진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기득권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세대에서 세대로 부를 세습하고 그 세습되는 부의 크기는 보통사람은 쳐다보기도 숨차다. <21세기 자본론>에서 토마 피케티는 세대 간 전쟁이 계층 간 전쟁을 대체하지 않는 것이 그동안 자본주의 역사에서 드러난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세대 사이에서의 불평등이 다른 세대 사이의 불평등보다 크고 그 불평등은 확대되어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3) 벗어날 수 없는 빈부격차는 미래세대에게는 ‘빚 폭탄’ 만큼 무거운 유산이다.
 
미래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은 모든 부모세대의 희망이고 사는 이유다. 자식에게 빚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는 없다. 
 
그러나 빚을 남기지 않겠다고 현재 세대의 가난한 이들에게 더 참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아니다. 파이를 키우자는 명분으로 개발 이익을 나누지 않던 재벌이나 부유층이 제 몫의 분담을 감당하기만 해도 미래세대에게 ‘빚 폭탄’도 빈부격차도 갈등도 넘기지 않을 수 있다.

 

03-l.jpg »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 환경개발회의 개막식 모습. 이 회의에서 지속가능 발전의 필수요건이 빈곤 퇴치임을 재확인했다. 사진=유엔
 
지속가능한 발전의 필수요건이 빈곤의 퇴치4)라는 것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150여 나라가 1992년 리우선언5)에서 이미 천명한 일이다. 자유와 평등을 포함하는 기본권이 인간의 삶에 행복과 존엄을 주는 환경을 만드는 기본요소이며 지속가능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장기계획의 출발선은 지금이다. 장기적인 국가계획을 짠다면서 계층 간 형평성은 미뤄두고 세대 간 형평성에만 목맨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미래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발 이익을 독차지한 기득권층만의 미래 세대를 위하는 일일 뿐이다. 
 
이수경/ 환경운동가,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1) 1972년 스톡홀른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채택된 선언으로 이후 1975년 국가의 경제적 권리 및 의무에 관한 헌장(유엔경제헌장), 1979년 대기오염의 장거리 국경이동에 관한 제네바 협약, 1982년 해양법 협약, 1985년 오존층보호를 위한 빈 협약, 1989년 유해폐기물의 국가간 이동 및 처분 규제에 관한 바젤(Basel) 협약, 1992년 기후변화 협약과 생물다양성 협약 및 리우 선언의 원칙이 되었다. http://www.unep.or.kr/sub/sub05_02.php?mNum=5&sNum=2&boardid=data2&mode=view&idx=89

2) http://practice.greenkorea.org/index/?p=10536

3)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글항아리, pp286~325.

4) http://lasulawsenvironmental.blogspot.kr/2012/07/indira-gandhis-speech-at-stockholm.html

5) http://www.dicer.org/07_Know/01_Word_View.asp?txtIdx=2111&gotopa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