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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총론

환경상식 톺아보기 - 지나친 공포? 우리에겐 스스로 조심할 권리가 있다

지나친 공포? 우리에겐 스스로 조심할 권리가 있다

김찬국

 

인터넷한겨레, 환경상식 톺아보기  2015. 06. 18

 

위험은 확률과 심각성 만으로 계산 못하는 인식의 문제…확률은 우리도 안다

통제 가능성, 자발성, 형평성, 신뢰 등이 위험 인식의 크기 결정…가르치려 들지 말라
 
05337782_R_0.jpg » 썰렁한 남대문시장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여파로 일본,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국이 줄어들고, 장을 보려는 시민들의 발길도 뜸해진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누가 이 두려움을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로 인한 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해 모든 미디어가 관심을 갖고 다루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글을 보태야할지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최근 몇몇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행보를 보며 우리 사회가 위험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스스로 조심하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너무 아는 체 가르치려 하는 건 아닌지 또 다른 우려가 들어 글을 쓰게 되었다.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메르스 자체보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떨쳐내야 한다”며 안심을 강조하고 있다. 불신이야 정부가 자초한 면이 크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공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누가 굳이 반대할까?
 
손님이 줄어든 국밥집에 손자, 손녀를 데리고 갈 정도라면 그저 정치인의 몸짓이라기보다는 진심으로 현재의 위험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고 믿고 싶다.

 

05336718_R_0.jpg » 16일 메르스로 병원전체가 격리조치된 양천구 신월동의 메디힐병원을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당대표가 의료진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정부와 여당이 메르스에 대한 공포를 눅이려 애쓰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많은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을 ‘난리’라고 표현하면서까지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그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서 꽤나 목소리 내는 이들이 (굳이 지도층 인사라고 하지 않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도 왜 우리는 그들의 말을 충실히 따르지 않는 것일까?
 
내가 속한 비교적 소규모의 학술단체는 최근 정기모임을 연기하였고, 비슷한 행사 연기 내지는 모임 취소가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없는 행사를 만들어서라도”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이 갖는 위험에 대한 인식과 상당히 동떨어져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어느 정도가 지나친 두려움이고 어느 정도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두려움인지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히 안전하다는 말을 믿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누가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결혼식에서조차 마스크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왜 “과도한 공포”에 휩싸였는지 세심하게 헤아릴 생각이 없다면, 안심시키기 위한 과감한 행보는 얼마나 안전한지 잘 모르는 ‘무지’한 대중을 가르치려는 ‘울리는 꽹과리’ 혹은 헛된 열심에 불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어떤 이들의 위험(risk)에 대한 자세와 너무나 닮아있다.   
 
관악산에 방사선폐기물처리장을 짓자고?
 

00793198_R_0.JPG » 초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강창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오른쪽)와 황우석 수의대 교수 등 서울대 교수 7명이 2004년 1월7일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 교수 60여 명이 서명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서울대 부지 안 관악산 유치 제안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이 이야기의 배경인 2004년 1월 당시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방폐장) 후보지를 선정하지 못하여 안면도, 굴업도에 이어 부안에서 큰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강창순 당시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황우석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 교수 63명이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방폐장)”을 서울대 부지 내 관악산에 유치하자고 주장하는 성명을 내었다.
 
지진과 지하수 유입 등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암반 지질인 관악산에 동굴을 파서 방사성폐기물을 보관하면, 기술적으로 안전문제와 부지문제 등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방폐장의 입지는 이후 2005년 경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해프닝과 같았던 이 이야기를 지금 다시 듣는 관악주민께서는 놀라지 않길 바란다. 경주시 양북면에 만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 대해서는 지하수 유출 가능성으로 인한 이견이 존재한다.
 
왜 성명을 낸 이들은 그간 아무도 고려한 바 없는 관악산에 방폐장을 유치하자는 제안을 하였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관악산에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을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보다 오히려 자신들이 일하는 대학 바로 옆에 있어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그 안전성을 강하게 설득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성명이 나온 바로 그날부터 한동안 서울대학교 구성원뿐 아니라 관악구청장을 비롯한 지역주민, 서울시민 등의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왜 우리 정도의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믿지 않느냐고, 방사성폐기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전문가가 하는 판단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었겠지만, 당시 관악주민을 비롯한 서울 전역은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난리’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성명에 참여한 전문가 중 일부는 분명 방사성폐기물로 인한 사고의 가능성을 매우 낮게 설정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낮은 가능성이라도 그것이 바로 나의 가족과 우리 삶의 안전을 위협할 때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위험 인식(risk perception)의 관점에서 한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 같은 전문가가 안전하다고 말하는데 “과도한 공포”로 불필요한 걱정을 하는 무지한 대중들의 ‘난리’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관적 위험 인식의 정당성
 

04296142_R_0.jpg »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2012년 5월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수입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일반 시민들은 생소하거나 불확실하여 그 결과를 분명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을 접하게 될 때 과학자들이 계산한 위험보다 훨씬 심각하게 인식하기 마련이다.1) 특히 그러한 위험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거나 책임을 맡은 주체가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개개인이 느끼는 위험은 더욱 커진다.
 
최근 한 정치인은 광우병 파동 사례를 들며 큰 논란이 일고 공포가 심했지만 결국 아무도 죽지 않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는 위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이미 ‘위험의 기술적 모형’과 ‘위험의 문화경험적 모형’의 대비를 통해 충분히 논의한 부분이다.
 
기술적 모형은 위험의 정도를 해당 사건의 발생 가능성과 심각성을 곱해 계산한다. 이에 반해 문화경험적 모형은 위험에 노출된 이들이 겪는 경험과 사회적 맥락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려고 한다.
 
즉, 우리의 위험 인식을 결정하는 요소들로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종류의 위험인가(통제),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위험인가 아니면 강요된 것인가(자발성), 별다른 혜택 없이 나에게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가(형평성), 정부기관 등의 위험을 다루는 방식과 절차가 믿을만한가(신뢰)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정치인의 걱정과는 달리 시민들도 광우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광우병으로 죽을 가능성이 자동차 사고나 암벽 등반으로 죽을 가능성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말이다.
 
자동차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매우 많지만 우리는 자동차 운전을 한다. 또한 암벽 등반을 즐기는 이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지난 정부 초기에 벌어진 그 ‘난리’는 많은 시민들이 반대한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형평성의 문제였고, 광우병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음에 대한 반발이었다.
 
동시에 많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위험이 아니면서 생경하기까지 해 시민들의 위험 인식 수준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특히 해당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고 시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해 중·고등학생들조차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 전문가가 되어야했던 지난 정부 초기를 기억한다면, 당시에도 유력한 정치인 중 한 분이 결국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 별로 없지 않았냐고 손들어보라는 정도의 인식 수준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위험을 함께 공감하고 품어줄 그릇은 아닌 것 같다.
    
조심조심 살아갈 권리와 두려움을 덜어줄 의무

05331173_R_0.jpg » 6월8일 서울 명동 거리를 마스크를 쓴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김봉규 기자

 
내가 속한 학술단체에서 정기모임을 연기할지 논의할 때에도 현재 메르스와 관련한 상황이 갖는 위험의 정도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였다. 나 역시도 일상적인 학문 활동을 위해 모여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이견과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구성원 중 메르스에 유독 취약하거나 현 상황을 더 걱정스럽게 보는 이들을 고려하는 것도 바람직한 결정의 한 방식일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나이가 많은 분,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분, 건강에 대한 우려 수준이 높은 분들이 더 많이 걱정하면서 신경 쓰고 조심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또한 다행히 우려한 일들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일부 구성원이나 우리 사회에 초래될 만의 하나 심각한 결과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대처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조심조심 살아가는 것은 우리들의 권리에 해당한다. 우려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하여 그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정부와 전문가가 할 일이다.
 
또한 그러한 걱정과 우려를 끊임없이 표현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 중 하나이다. 후쿠시마 사태에서도, 4대강 사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괜찮다고 한 정치인들이 이후 우려했던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전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2015년 대한민국에서 내가 하는 걱정이 불필요하고 지나치더고 가르치려드는 이들의 오만함에 주눅 들지 말자. 걱정되면 조심하고, 마음이 놓이는 상황이 되면 그 때 안심하면 된다.
 
실컷 걱정하도록 만들어 놓고 그건 ‘지나친 걱정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에 대한 기술적 모형도 문화경험적 모형도 아니고 ‘상식’과 ‘공감’이 부재한 것이다.
 
특히, 새로운 종류의 위험에 대해서 우리가 훨씬 더 불안해할 수 있다는 인식상의 특성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대응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가급적이면 많은 정보를 찾아서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모두 메르스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메르스와 관련하여 위험의 정도를 정확하게 알려드릴 재주도 없고, 그러한 위험을 덜어드릴 능력은 더더욱 없는 글쓴이가 굳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한 가지 ‘상식’은 적어도 우리는 걱정하면서 스스로 조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위험에 노출된 우리의 상황과 우려를 반영하여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떤 이들의 의무일 수 있는 것처럼.
 
김찬국/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환경과공해연구회 운영위원

 

1) Slovic, P. (1987). Perception of risk. Science, 236(4799), 280-285. Cox, J. R. (2012). Environmental Communication and the Public Sphere. SAGE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