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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유해물질 및 환경피해

환경상식 톺아보기-일상 속의 화학물질: 어찌해야 하나? ① 실태

인터넷한겨레 2014년 12월 1일 실린 글입니다.

 

환경상식 톺아보기-일상 속의 화학물질: 어찌해야 하나? ① 실태

 

 

 

태어날 때 이미 150종 화학물질 세례, 만성 유해성과 복합독성 등 정확히 몰라

불확실성 높은 화학물질 세상 살아가는 지혜는 가능하면 노출량 줄이는 것
 

Cafaminol_3D_spacefill.jpg » 우리는 화학물질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건강영향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코막힘 약으로 쓰이는 카파미놀의 3차원 모형.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맛나게 느끼도록 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더하는 무수히 많은 식품첨가물. 새로 지은 집의 내장재. 편리한 플라스틱 용기와 랩. 아이들 젖병, 장난감, 가전제품, 컴퓨터, 소파, 침대 등에 들어 있다는 환경호르몬. 찌든 때, 기름때, 더러운 변기 등을 손쉽게 청소해 준다는 주방과 화장실, 욕실용 세제들. 화장품, 샴푸, 화장실이나 자동차 내부의 악취제거를 위한 방향제들. 모기약과 해충 박멸제, 살균제. 음식이 눌어붙지 않도록 한다는 프라이팬 바닥 코팅. 늘 입는 옷들. 그리고 이런저런 건강보조제. 일부 의약품들. 의식주를 위한 거의 모든 것들 안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들 얘기이다.
 
큰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의 상표를 살펴서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것을 찾다 보니 두어 시간에 수백 개의 상품을 찾아낸 적이 있다. 만일 화학물질만을 투시할 수 있는 장비로 볼 수 있다면 이러한 마트들은 거대한 화학약품의 진열장과 잘 구분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림1.jpg » 대형 마트의 생활용품 매장에 가면 화학약품 실험실을 보는 것 같다.
 
화학물질은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하고, 편하게 해주며, 반드시 있어야만 가능한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정말 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이들을 섭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5년의 미국 질병관리센터(CDC)의 조사결과를 보면, 갓 태어난 아이를 포함해서 모든 연령대의 미국인들 몸속에서 150여 종의 화학물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자료를 볼 때마다 걱정이다.
 
이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쓰고 섭취해도 괜찮은 것인가? 이런 걱정은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사고와 그 피해 사례를 접할 때 더욱 커진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기를 포함하여 144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피해를 입는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아주 최근에도 발암물질이 치약 속에 있다거나 서울시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환경호르몬인 DEHP의 실내 먼지 중 농도가 미국보다 10배 이상 높았다는 뉴스가 계속되고 있다.

 

사본 -04613990_R_0.jpg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군이 서울 송파구 신천동 옥시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주최 쪽인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의 말을 듣고 있다. 사진=박종식 기자
 
이런 사고와 피해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영향에 대한 관심이 일기 마련이며 그에 따른 전문가들의 조언도 있고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이들이 제안하는 나름의 답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여러 조언이나 답을 보면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유해하다 그렇지 않다 등 엇갈리거나 애매해서 우리의 걱정은 여전하고 해결할 방법도 막연하다.
 
사실 이러한 궁금증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풀어 줄 방법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화학물질의 건강영향에 대한 지식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에 의한 건강영향은 두 가지 점을 동시에 고려해야 알 수 있다. 화학물질의 유해성과 그에 대한 노출량이다. 즉, 아무리 유해하다 하더라도 그 물질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면 건강영향은 없는 것이고, 유해성이 크지 않아도 다량으로 노출이 일어나면 그 영향을 걱정하게 된다.
 
그런데 보통의 기대와는 달리 늘 사용되는 그 많은 화학물질 가운데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더구나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는 만성적 유해성에 관한 지식은 특히 더 부족하다. 또 개별 물질들의 독성은 어느 정도 알아도 그 물질 여럿이 섞이면 얼마나 유해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노출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장기간에 걸쳐 어떤 물질에 얼마나 많이 노출될지를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규제 유해물질이라 하더라도 대개는 개별 제품별로 허용함량이 정해지기 때문에 그 물질을 함유한 여러 종류의 다른 제품들을 사용하는 경우 총 노출량이 증가하여 개별적인 제품별로 정해놓은 허용량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요즘 우리는 대부분 만성독성 물질에 대해 미량으로 장기간 노출이 일어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가습기 살균제 사고처럼 당장에 생기는 문제도 걱정이지만, 나중에 나 자신이나 자식들에게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또 일상에서 여러 가지 물질을 동시에 지속적으로 섭취하기 때문에 몸속에서 섞이게 된다. 이 문제는 화학물질의 건강영향에 대해 정확한 평가가 특히 어려운 바로 그 영역에 속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거나 애매한 의견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림2.jpg » 한 방향제의 성분명을 '향료'라고만 적어놓아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없게 돼 있다.
 
궁금증과 걱정의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불완전한 지식이나마 일반인들에게 실용적으로 전달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상품에 어떤 화학물질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충실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일부 물질만 표시되어 있다든지, 구체적인 화학물질명이 아니라 뭉뚱그려서 일반적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다반사이다.
 
표시되어 있더라도 화학물질명도 낯설고 어렵다. 이는 유해성이 궁금하여 직접 알아보고자 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높은 걸림돌이다. 알아봐야 할 물질의 수가 많아지면 그 이름만으로 암호문 수준의 벽이 된다. 겨우 이런 벽을 넘어서 유해성 설명자료에 도달하더라도 종종 이해하기 어렵고 와 닿지 않는 설명이 기다리기 일쑤이다.

 

그림3.jpg » 표지 맨 아래 나열된 화학물질 이름은 너무 어려워 일반인들은 거의 해독이 어렵다.
      
전문가들도 엇갈리고 스스로 알아내기도 어려우니 결국 소비자로서 일반 시민들은 걱정만 앞설 뿐 판단이 잘 안 선다. 이럴 때 시민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앞에서 말한 노출을 줄이는 것이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실 화학물질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또한 시민들의 역할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노출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뾰족하고 명쾌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백 개가 넘는 화학물질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에서는 화학물질 전문가조차 자신의 일상에서 물질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과학적으로’ 노출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억과 실천이 쉬운 일반적 지침을 만들어 따르는 것이 거의 모든 이에게 더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지침들이 모든 문제를 예방할 수 있거나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는 게 병이 아니라 힘이며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그러한 지침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글·사진 이동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과 공해 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