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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총론

대화와 타협도 환경운동이다


대화와 타협도 환경운동이다

신 창 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


방조제를 막았다고 해서 새만금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 동안 새만금 논쟁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들이 있었지만 대법원이 판단한 것은 단지
공유수면(만경강과 동진강 갯벌) 매립(간척)면허의 취소에 관한 사항이다.
1심에서는 방조제를 막을 경우 수질오염이 심화돼 당초 매립목적인 농업용수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해수유통에 따른 토지용도 변경 등 매립면허의 목적도 이에
따라 변경해야 한다고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사실상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에서는 새만금호의 수질이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매립면허를 취소할 특별한 사유가 없다고 판결하여 농림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1심과 2심의 연장선에서 매립면허를 취소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변경 사유가 발생했느냐 여부가 초점이었다. 대법원은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수질오염, 해양오염 가능성 등에 관한 과학적 타당성이나, 농지 또는 산업단지의
경제적 타당성 등에 관한 실체적 판단보다 농림부의 사업추진 과정에서 법이 정한
절차를 위반했는지, 위반의 정도가 매립면허를 취소할 정도의 심각한 위반인지
여부 등에 관한 절차적 판단에 주력한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이 새만금 사업의
계속 판결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수질오염, 해양오염, 생태계 파괴, 경제적 타당성
등에 관한 과학적, 경제적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로도 해소되지 않은 새만금 쟁점

첫 번째 쟁점은 수질오염 문제다. 농림부는 만경강과 동진강으로 유입되는
생활하수, 산업폐수, 축산분뇨 등의 오염물질량을 줄여 새만금호의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상류지역인 전주에서는 그린벨트 해제지역의 대규모 개발을
위해 환경규제 완화를 요청하는 정반대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 상류지역을
개발하면 새만금호 수질이 오염되고 새만금호 수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상류지역
개발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새만금 개발이 먼저냐 전주권 개발이 먼저냐의
문제는 상류와 하류 주민 간의 새로운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금강 물을 끌어다
새만금호를 희석하는 계획도 수리권을 둘러싼 금강유역 주민들과 농림부 간의
물싸움이 우려된다. 
두 번째 쟁점은 매립지의 용도변경 문제다. 지금 새만금 간척지를 농지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역주민은 거의 없다. 전라북도 주민들의 꿈은
새만금이 서해안 시대의 전진기지로 발전하여 부산항, 인천항과 더불어 3대항의
하나였던 군산항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정부도 수질오염 우려가 있는 담수호나
경제성이 떨어지는 농지보다 해수유통으로 제2의 시화호가 될 위험성에 대비하면서
산업, 관광, 해양단지로 개발하는 용도변경 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 번째 쟁점은
수질개선 비용과 재원조달 문제다. 새만금호의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류지역에 생활하수와 산업폐수, 축산분뇨 처리장 수십 개가 필요한데 이것을
오염원인자인 전라북도가 부담할 것인가 아니면 수익자인 새만금 사업자가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전라북도와 농림부 간의 갈등이 이미 진행 중이다. 

새만금 사업을 계속하더라도 개발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상류와 하류지역 간의
갈등, 비용부담과 재원조달 방법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눈앞에 쌓여있다. 정부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앞으로 또 몇
조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려면 다른 지역의 개발예산을 뒤로 미루는
예산집행의 우선순위 조정도 불가피하다. 이렇게 산적해 있는 과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새만금은 전북발전의 희망이 아니라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소송이나 시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협상과 조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대법원 판결 이전보다 더
활발한 대화와 타협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민, 환경단체들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만금 문제는 2000년 8월 찬반양론이 팽팽한 민관공동조사 결과가 나온 후
대통령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으나 놓치고 말았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절충안은 일단
방조제를 막되 만경강의 수질이 환경기준을 달성할 때까지 시화호처럼 수문을
개방하여 해수를 유통하고, 상대적으로 수질이 양호한 동진강 유역부터 간척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농림부는 방조제 완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환경단체는
해수유통으로 수질오염과 해양오염 방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타협안이었다.
방조제를 막게 되면 어느 정도 갯벌의 유실은 불가피하지만 해수유통이라는
물꼬를 터놓게 되면 이후 새만금호의 수질이나 방조제 바깥 해양의 오염 정도에
따라 시화호처럼 영구 개방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협상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인
결과는 없다. 환경단체가 절반은 양보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대안을
거부하고 대화의 장에서 철수해 버린 것이 오늘날 환경운동의 위기를 가져온
단초가 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환경운동

혹시 환경단체들이 동강댐에서 거둔 승리에 도취하여 새만금 문제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은 아닐까? 그러나 동강댐 백지화는 전 국민을 동강댐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한 환경단체와 언론의 홍보 노력도 있었지만, 이면에는 동강댐 상류의 개발을
위해 상수원 다목적댐의 건설을 반대한 강원도 의회와 도지사, 선거를 앞둔
여당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발(수자원공사, 건설교통부)과
환경(환경단체, 환경부)의 싸움에서 또 다른 개발(강원도, 여당)이 환경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대통령의 백지화 선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새만금은 어떤가. 동강댐 만큼 새만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게 하는 운동도
부족했고, 새만금 사업이 지역발전의 희망이라고 믿고 있는 전북 주민들과
연대하는 노력도 부족했다. 여론조사에서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항상 80%
이상이지만 실제로 개발과 환경이 싸우게 되면 정부(대통령을 포함해서)는 다수의
여론을 따르게 돼 있다. 그런데 환경단체들은 다수 여론의 지지를 확대하려는
노력보다 대통령과 담판을 지으려고 하거나 삼보일배 등의 순교자적 운동,
언론플레이 운동에 주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조제 완공 후 해수유통” 및
“선 동진강 후 만경강 개발”이라는 대안은 그 동안 환경단체들이 기울인 노력에
비해 상당히 진전된 타협안이었는데 환경단체들은 이것을 거부해버렸다. 동강댐
백지화 이후 환경단체들이 너무 자만했던 건 아닐까? 환경단체들이 반대하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권위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대중들을 의식화,
조직화, 무장화하는 운동보다 삼보일배나 단식농성 등의 운동방식을 더 선호한
것은 아닐까? 환경운동의 대중화, 지방화보다 언론 중심의 운동방식 때문에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개발정책들 앞에서 무력감과 좌절감만 느끼는 위기가
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새만금 문제에서 배워야 할 교훈 중의 하나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학적
판단도 사회적 합의기준이 없으면 개발과 환경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인 사실조사 결과는 단지
참고사항으로 활용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사회적 판단기준을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하는 이해관계자 참여형 의사결정 절차가
중요하다. 진정한 참여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15년 만의 물막이 완공으로 새만금 사업이 끝난 것이 아니듯이 새만금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막이 반대 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물막이 후의 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물막이 반대 못지않게 중요한 운동, 개펄을 땅으로 바꾸는 과정의
감시운동, 대안운동이 필요하다. 환경단체들과 연대하여 방폐장 반대운동에 성공한
부안주민들이 새만금 반대운동은 연대를 거부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동안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앞으로 또 15년 동안 해야 할 새만금 운동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지속가능한 새만금을 위한 사회협약

첫째, 정부가 말하는 ‘친환경 순차개발’의 내용을 구체화해서 새만금
개발방식에 관한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일이다. 당초 검토한 대로 시화호처럼
배수갑문을 개방하는 해수유통 방안을 공식화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새만금호의 수질을 환경기준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고, 대법원은 이
약속을 믿고 매립면허를 취소할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영구적인 해수유통이 불가피하고 간척지의 면적은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된다.

둘째, 새만금 토지이용 방안에 관한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일이다. 이제까지
거론된 농지, 공장, 항만, 풍력발전, 관광, 해양도시 등 다양한 토지이용
계획들의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타당성들을 재검토해서 이 땅을 사용할 미래
세대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토지이용 계획이 무엇인지, 그에 따른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간척사업의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에 졌다고 해서 미래세대가 물려받을 새만금에 관한 발언권까지 빼앗긴 것은
아니다. 6월말에 국토연구원의 시안이 나오면 이것을 환경과 미래의 관점에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셋째, 새만금 생태계 보존대책에 관한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일이다. 간척사업으로
변화가 예상되는 생태계 중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생물종은 어떤 것들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것들을 지킬 수 있는지, 비용은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새만금은 시베리아와 호주를 오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므로 이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서
관련 국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예산을 분담하는 국제협력도 중요하다. 

물막이를 완공하기 전까지 새만금 운동의 주제가 갈등이었다면, 본격적인 매립 등
내부개발에 착수하는 새만금 운동의 주제는 상생이다. 정부, 기업과 함께 대화와
타협, 신뢰와 협력의 거버넌스를 통해 새만금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일이야말로
물막이 완공 후의 새만금에서 환경단체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 제4기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이고 환경단체 대표가 위원장이 됐다. 지난 3년 동안 쌓인 갈등과
불신의 앙금을 하루아침에 해소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새만금을 위해서는 이러한 거버넌스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거버넌스란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기준을 만들어가는 사회적
합의절차다. 제4기 위원회에서는 대화와 타협도 환경운동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