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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수질

수돗물안전과 정부 억지(2001)


 <포럼>수돗물안전과 정부 억지

지난 9월10일 환경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소감은 한마디로 참담했다. 억지가 논리를 압도하는 모습에 나라의 장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첫번째 억지논리:그대로 마셔도 괜찮다.

환경부는 수돗물이 바이러스에 오염됐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한 후에도 오염된 수돗물을 그대로 마셔도 된다고 계속 주장해 왔으며 국감에서도 환경부가 추천한 증인들은 수돗물을 마신다고 꼭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정부를 두둔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수돗물에서 검출된 바이러스의 농도와 종류를 검토한 결과 수돗물을 마실 경우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확인한 후 “수돗물의 바이러스문제가 해결돼 안심할때까지 끓여마시라”고 국민에게 권고했다.

또한 미국 환경청이 작년 5월 연방 관보에 공고한 수도법 개정안에는 수돗물의 바이러스오염에 의해 임산부와 어린이들이 병에 걸리거나 사망할 위험이 크다며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아와 어린이는 장바이러스에 의해 감염과 발병 확률이 매우 높다. 장바이러스는 소아마비, 심장질환, 뇌염, 출혈성 결막염, 수족구병, 당뇨병과 연관돼 있다. 임신중에는 장바이러스에 의한 위험성이 더 커진다.

임산부의 장바이러스 감염은 임신 후기에 태아에게 전염될 수 있으며 이는 종종 신생아에게 심각한 질병을 일으킨다. 콕사키바이러스와 에코바이러스는 어머니에게서 자궁내의 태아로 전염될 것이다.” 태아에게까지 전염된다는 이 두 종류의 바이러스는 우리나라 수돗물에서도 검출됐다.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서울의대 소아과교수는 우리나라 수돗물에서 검출된 바이러스에 의한 어린이 환자가 일년에 수만명 발생하고 있으니까 물을 끓여 마시라고 정부가 알려야 한다고 증언했으나 환경부 장관은 끝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두번째 억지논리:대도시 수돗물은 안전하다.

중소도시 수돗물에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됐지만 대도시는 안전하다는게 정부의 주장이다. 환경부와 서울시의 조사에서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이미 11차례나 서울시 수돗물에서 감염성바이러스를 검출해 국내외에 발표했다. 또한 서울대 소아과교수도 서울시 수돗물에서 병원성 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증언도 정부의 수돗물에 대한 맹신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번째 억지주장 : 조사방법논란.

서울대 조사방법과 결과에 대한 학회와 전문가집단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속 방법상의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6월25일 임시국회에서 환경부장관은 미국 환경청도 유전자검색법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변하고 문서로도 제출하였다. 그러나 미국 환경청이 공고한 수도법 개정안에는 유전자검색법으로 바이러스오염도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여러 결과들이 수록돼 있다. 미국에서 이 방법을 사용한 까닭은 다른 방법으로는 많은 병원성 바이러스의 오염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장관의 답변은 이날도 수정되지 않았다.

이런 억지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는 동안 환경부는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될 경우 물을 끓여 마시라는 바이러스경보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국감에서 환경부장관은 수돗물 바이러스조사는 돈이 많이 들어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여러차례 천명했다. 그렇다면 조사도 하지않는데 어떻게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될 수 있어서 경보를 발하겠는가. 국민을 또 한번 우롱하는 처사일 뿐이다. 또한 그대로 마셔도 괜찮다는 그동안의 입장에서 국감을 앞두고 갑자기 후퇴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년에 70만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수만명의 어린이가 병에 걸리고 있다. 이들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도 수돗물의 안전성은 확보돼야 한다. 국감에서 밝혀진대로 바이러스오염 사실을 밝힌 학자에게 연구비를 주지않도록 정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치졸한 공작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게 아니라, 올바른 정보라도 알려서 국민 스스로가 자구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의 첫단계는 대도시 수돗물에 대한 정밀조사를 즉각 시행,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다. 남은 국감기간에 이것만이라도 이끌어내기 바란다.

<감상종 서울대교수 ·생명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