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실/ 수질

국민 속이는 수돗물 정책(2001)


<포럼>국민 속이는 수돗물 정책

지금이 21세기인데도 국민의 정부가 맞는지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기관의 외압에 의해 10분 가까운 분량의 방송이 통째로 삭제되어 버렸다고 한다. 서슬이 시퍼렇던 중앙정보부의 솜씨가 아니라 학자 출신의 장관이 이끄는 환경부의 작품이라고 한다.

수돗물대책에 관한 최근의 발표에서 정부 7개 부처는 하지도 않은 역학조사를 마치 한 것처럼 왜곡시키며 ‘수돗물로 인한 바이러스질환은 발생한 적이 없다’고 말을 짜맞추었다. 환경부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알리려던 방송내용이 강제로 잘려버렸다고 한다. 막강한 관료집단의 간단한 한판승이다.

“바이러스로 오염된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되느냐.” 최근에 자주 받는 질문이다. 선진국에서는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약한 미생물로 오염되었을 경우에도 직접 마시는 물 이외에 요리할 때, 얼음 만들 때, 손 씻기, 양치질, 아이들 세수, 장난감이나 아이들 물건 씻을 때도 수돗물을 끓여서 사용하라고 권고한다고 대답한다. 수인성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수돗물에 오염되어 있다면 끓여서 소독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김명자 장관은 방송에 직접 출연하여 “그렇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보고가 있었다. 제일 많이 나온 데가 하루에 그냥 마시는 물의 양이 2ℓ라고 했을 때 한 마리도 아니고 0.6마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대로 마셨다고 했을 때 위해성을 따져 본다면 그렇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며 국민을 안심시키고 있다.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대단히 위험스럽다. 바이러스는 평균값으로 계산해서 따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생물체가 쪼개져서 수돗물 속에 골고루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져서 그대로 사람 몸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는 단 한개의 바이러스도 어린이나 노약자같은 예민한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평균값으로 따진다 해도 한 종류의 장바이러스에 의해 주민 1%가 감염될 수 있는 양이 0.03마리로 조사되어 장관 말대로 0.6마리가 나온 수돗물은 그 20배를 초과하였고 이는 주민 20%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이러스 조사방법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미국 환경청의 방법만을 따르고 다른 방법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환경부가 정작 수돗물 관리기준은 왜 따르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국 환경청은 수돗물 1000ℓ에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고 기준초과시에는 주민들에게 끓여 마시라고 즉시 경고를 한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미국 기준을 300배 이상 초과 검출된 물도 환경부장관은 괜찮다고 그대로 마시라고 하고 있다. 또 다른 사실왜곡이다.

환경부는 바이러스검출 사실을 무려 9개월씩이나 감추고 알리지 않아 그동안 국민을 바이러스 감염위험에 무방비로 방치해 두었다. 환경부장관은 “그 결과를 보고 즉각 발표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논의가 있었는데 아무 대책없이 발표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 싶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기위해 그 정수장에서 기술진단에 들어갔다”고 해명하였다.

호주 시드니의 경우는 수돗물이 바이러스보다 감염력이 약한 원생동물에 오염되었을 때도 주정부가 즉시 나서서 모든 경우에 수돗물을 반드시 끓여서 사용하라고 적극 홍보하여 대량감염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오염된 수돗물이 흘러 들어간 바닷물에서의 물놀이까지도 금지시켰었다.

국가정책의 기본목표는 국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현 정부의 지지층이었다는 서민과 중산층조차 등을 돌리는 이유는 국가정책이 이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분변과 함께 배출된 바이러스가 수돗물에 다시 나타나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그 한 사례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실을 9개월이나 조직적으로 감춘 관료집단이 이제는 장관까지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방송까지도 쥐고 흔들고 있다. 국회 환경위에서 이름을 날리던 정치인이 집권여당의 정책위 의장을 맡으면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정책의 현 주소이다. 국민이 실망하다 못해 분노하며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김상종 서울대교수 ·환경미생물학

        2001/06/13